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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노조 근무조건, 단체교섭 대상” 법원 첫 판단, 이유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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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3-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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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노조 근무조건, 단체교섭 대상” 법원 첫 판단, 이유는


2023.09.13  경향신문  김희진 기자


홍익대가 소속 교수 임금을 인상하라는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중재재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법원은 사립대학 교수 노동조합도 임금을 비롯한 근무 조건에 대해 학교 측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학 교수노조가 합법화된 후 법원이 이들의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중노위를 상대로 낸 중재재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지난 7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중재재정은 중노위가 노동쟁의에 대해 판단이다.


홍익대 교수노조와 학교 측은 2020년 12월부터 약 1년간 해오던 교섭이 결렬돼 중노위 조정 절차를 밟았다. 중노위는 지난해 5월 교원 임금을 3%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중재안을 내놨다. 홍익대 측은 이에 불복해 같은 해 6월 소송을 냈다.



‘합법’ 교수노조, 임금 교섭할 권한은 없다?


중재재정 중 임금협약에 관한 내용이 교원노조법상 단체협약의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됐다.


홍익대 측은 교원의 인건비는 단체협약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예산’에 해당하며 중재재정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원노조법상 법령·조례 및 예산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은 단체협약의 효력을 가지지 않으며, 사립학교법상 ‘학교에 속하는 예산’은 학교의 장이 편성하고 등록금심의위원회 심사·의결을 거쳐 확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배제하고 중재재정으로 교원의 인건비를 정하는 것은 사립학교법 취지에 반하고 대학의 자율성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법원은 학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원노조법상 단체협약 효력을 부정하는 ‘법령·조례·예산 등에 위배되는 내용’은 국회의 입법권과 예산권 등이 침해될 우려를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사적 주체에 불과한 학교법인이 사용자인 사립대학 교원에게는 이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학 교수노조는 초·중등학교 교원노조와 달리 고용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점, 사립대학 교수의 임금 등 근무 조건은 기본적으로 학교법인 자율에 맡겨져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


법원은 특히 홍익대 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와 교원노조법 개정 경위, 헌법과 교원노조법이 사립대학 교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2018년 대학교수들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교원노조법은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노조 가입범위에 대학 교원을 포함해 2020년 개정됐다.



“사립대학 교원노조,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어야”


재판부는 교수노조의 경우 일반 노조와 달리 쟁의행위가 금지돼 있어 단체교섭이 결렬돼도 주장을 관철할 수단이 따로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학 측 주장대로라면 “핵심적인 근로조건인 임금에 관한 협상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사실상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수 없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에 정한 중재재정이 내려지면 사립대학 경영자로선 결과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최근 들어 사회가 다층적으로 변화하면서 사립대학교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위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 비춰보면, 사립대학교 교원 노동조합은 사용자인 학교법인과 자유롭고 자발적인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중재재정으로 인해 학교의 관리·운영에 관한 학교 측 권한이 일부 제한될 여지가 있다고 가정해도 제한의 정도가 본질적이거나 근본적 수준에 이른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홍익대 재정 상황을 보면 중재재정에 따라 교수들에게 임금 인상분을 지급하는 것이 가능한 상태라고도 판단했다. 교원과 달리 예전부터 노조를 운영한 사무직원의 경우 학교가 매년 단체협약을 거쳐 인상된 임금 등을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지급한 점, 교비회계 결산서에 미사용 차기 이월자금이 예산으로 편성돼 있는 점, 등록금심의위원회나 이사회가 중재재정에 따른 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심사·의결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


이번 판결은 다수 대학의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노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지난 2월까지 교수노조가 노동쟁의를 조정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은 총 53건에 달한다. 서강대 등 다수 학교 측은 홍익대처럼 중노위 중재재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을 두고 교수노조에선 임금협상 문을 닫아두려는 대학들의 시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덕조 교수노조 위원장은 13일 “만약 이번 판결에서 학교 측이 이겼으면 교수노조는 임금협상을 비롯한 단체교섭 자체를 할 수 없어지는 상황이었다”며 “교수노조 존재 의의에 대해 법원이 적극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